타인위어 더비

타인위어 더비 - 북동부의 자존심을 건 영원한 라이벌리

매치데이가 다가오면 잉글랜드 북동부 전체가 들썩입니다. 타인위어 더비(Tyne-Wear Derby)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선덜랜드 AFC가 맞붙는 경기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두 도시를 가로지르는 타인 강과 위어 강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대결은 단순한 90분의 축구 경기가 아닙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부터 이어져 온 두 도시의 경쟁 의식이 그라운드 위에서 폭발하는 순간이죠.

선박 건조와 석탄 산업을 두고 벌인 경제적 경쟁, 서로 다른 억양과 생활 방식, 그리고 불과 20킬로미터 거리에서 형성된 독특한 지역 정체성. 이 모든 요소가 더비 매치를 북동부 지역민들의 자존심 대결로 만들었습니다. BBC Sport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 라이벌전은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격렬한 라이벌 관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5년 5월, 선덜랜드가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승리하며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했습니다. 이로써 2025-26 시즌, 2015-16 시즌 이후 무려 10년 만에 타인위어 더비가 잉글랜드 최상위 무대에서 재개됩니다. 리그 순위와 상관없이, 이 더비가 열리는 날이면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자부심이 뒤섞여 북동부 전체를 뜨겁게 달굽니다.

100년의 라이벌리 / 선덜랜드와 뉴캐슬의 역사적 배경

19세기 선박 건조가 한창이던 타인 위어 지역의 산업 풍경을 담은 흑백 이미지

두 도시의 앙숙 관계는 축구공이 굴러다니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의 열기가 잉글랜드 북동부를 뒤덮었을 때 뉴캐슬과 선덜랜드는 경제적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타인 강변의 뉴캐슬은 석탄 수출의 중심지로 번영했고, 위어 강을 끼고 있는 선덜랜드는 세계 최대 조선 도시로 명성을 떨쳤죠.

특히 조선업에서의 경쟁은 극에 달했습니다. 1840년대 선덜랜드가 연간 선박 건조량에서 뉴캐슬을 추월하자, 두 도시 간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일자리를 찾아 두 도시를 오갔고, 이 과정에서 지역 간 편견과 적대감이 뿌리내렸습니다. 펍에서의 말다툼, 시장에서의 경쟁, 심지어 철도 노선을 두고 벌인 정치적 다툼까지 – 일상의 모든 영역이 경쟁의 무대였습니다.

20세기 초, 노동자 계급의 오락거리로 축구가 급부상하면서 이 오래된 적대감은 새로운 분출구를 찾았습니다. 1898년 선덜랜드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뉴캐슬이 1905년 FA컵을 들어올렸을 때, 경기장은 두 도시의 자존심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었습니다. 탄광과 조선소에서 시작된 100년 묵은 라이벌 의식이 이제는 초록 잔디 위에서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두 도시의 뿌리 깊은 경쟁

빅토리아 시대의 산업 지도를 펼쳐보면, 타인 강과 위어 강이 만들어낸 두 개의 경제 심장부가 눈에 띕니다. 뉴캐슬은 ‘세계의 석탄 수도’라 불리며 영국 전체 석탄 수출의 4분의 1을 담당했고, 선덜랜드는 1850년대에 이미 전 세계 선박의 3분의 1을 건조하는 조선업의 메카로 자리잡았습니다.

노동자들의 자부심 경쟁은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습니다. 뉴캐슬 광부들은 “우리가 캔 석탄이 대영제국을 움직인다”고 외쳤고, 선덜랜드 조선공들은 “우리가 만든 배가 그 석탄을 실어 나른다”고 맞받았죠.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분석한 빅토리아 시대 산업사는 이러한 경쟁이 단순한 경제적 다툼을 넘어 지역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임금 격차, 노동 조건, 심지어 펍에서 마시는 맥주 종류까지도 도시의 우열을 가리는 잣대가 되었고, 이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뿌리 깊은 라이벌 의식을 형성했습니다.

축구로 이어진 대립의 시작과 본격적인 전개 과정

1888년 9월 8일, 두 클럽의 첫 공식 경기가 열렸을 때 관중석에는 이미 불꽃이 튀고 있었습니다. 뉴캐슬 이스트 엔드(현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전신)와 선덜랜드 AFC의 대결은 2-2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날의 긴장감은 앞으로 펼쳐질 격렬한 역사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진정한 폭풍은 1901년 12월 21일 로커 파크에서 터졌습니다. 선덜랜드가 2-0으로 앞서던 후반, 뉴캐슬 팬들이 경기장으로 난입하면서 대혼란이 발생했죠. 경찰 기마대가 출동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은 이 사건은 잉글랜드 축구사에서도 손꼽히는 초기 훌리건 사태로 기록됩니다. 당시 지역 신문들은 “산업 현장의 적대감이 축구장에서 폭발했다”고 보도했고, 이후 경기마다 경찰 병력이 대거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두 도시의 오랜 감정이 축구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역대 전적과 기록으로 보는 더비의 모든 것

타인위어 더비: 역대 전적 분석

1898-2016 완전 통계 데이터베이스

뉴캐슬 유나이티드

53

승리

VS

53

무승부

선덜랜드

50

승리

총 경기 수

156

리그 경기

첫 더비

1898

126년 역사

승률 차이

1.9%

극도의 균형

홈 경기 승률

세인트 제임스 파크

62%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58%

완벽한 균형의 라이벌리

156경기에서 뉴캐슬 53승, 선덜랜드 50승, 무승부 53경기. 단 3경기 차이라는 놀라운 균형은 잉글랜드 주요 더비 중에서도 가장 팽팽한 대결임을 증명합니다.

타인위어 더비의 156경기 역사는 단 3경기 차이라는 극도의 균형을 보여줍니다. 홈 경기에서 양 팀 모두 60% 전후의 승률을 기록하며 홈 어드밴티지의 중요성을 입증. 이는 타인위어 더비가 진정한 라이벌전의 정수임을 숫자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타인위어 더비의 진정한 무게를 이해하려면 냉정한 통계의 렌즈를 통해 바라볼 필요가 있죠. 1898년부터 2016년까지 이어진 공식 경기 기록은 두 클럽 간 팽팽한 균형과 치열한 경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11v11.com의 종합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양 팀은 총 156회의 리그 경기에서 맞붙었습니다. 뉴캐슬이 53승을 기록했고, 선덜랜드는 50승을 거두었으며, 53경기가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이처럼 극도로 균형 잡힌 전적은 잉글랜드 축구의 주요 더비 중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홈 경기 승률을 보면 더욱 흥미로운데, 뉴캐슬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62%, 선덜랜드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구 로커 파크 포함)에서 58%의 승률을 기록하며 홈 어드밴티지의 중요성을 입증했습니다.

이제 다음 섹션에서는 이 더비를 빛낸 개인 기록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최다 득점자부터 최단 시간 해트트릭까지, 선수 개인이 남긴 발자취들이 더비의 드라마를 어떻게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는지 확인해 보시죠.

공식 경기 기준 역대 승무패 상세 기록 분석

156회의 리그 맞대결에서 뉴캐슬이 53승, 선덜랜드가 50승, 53경기가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는 수치는 두 팀의 힘이 얼마나 팽팽한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컵 대회를 포함한 전체 공식 경기로 확대하면 총 186경기에서 뉴캐슬이 57승으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대회별로 세분화하면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납니다. FA컵에서는 뉴캐슬이 7승 3패로 확실한 우세를 보였지만, 리그컵에서는 선덜랜드가 3승 2패로 앞섰죠. 특히 1990년대 프리미어리그 시대에는 뉴캐슬이 12승 4패로 압도적이었던 반면, 1970-80년대에는 선덜랜드가 강세를 보이며 시대별 부침이 뚜렷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 전적에서 뉴캐슬이 7경기 차이로 앞서고 있지만, 이는 186경기라는 방대한 역사를 고려하면 3.8%에 불과한 차이로, 사실상 호각세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더비를 지배했던 최다 득점자 및 최다 출전자들

타인위어 더비의 영웅들 중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인물은 뉴캐슬의 전설 재키 밀번입니다. 1940-50년대를 지배한 그는 더비 매치에서만 11골(리그 9골, 컵 2골)을 터뜨리며 뉴캐슬의 역대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죠. The Mag의 역대 득점 순위 분석에 따르면, 선덜랜드의 조지 홀리가 15골(리그 13골, 컵 2골)로 전체 더비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뉴캐슬의 앨런 시어러는 7골로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최다 출전 기록은 선덜랜드의 짐 몽고메리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1960-70년대 골키퍼로 활약한 그는 무려 38경기에 출전하며 더비의 산증인이 되었죠. 뉴캐슬에서는 프랭크 허들스펙이 29경기로 최다 출전을 기록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기록 보유자를 넘어, 각 클럽 팬들에게는 더비의 정신을 체현한 상징적 존재로 기억됩니다. 특히 밀번의 11골 기록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뉴캐슬 선수로서는 깨지지 않은 대기록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더비 역사의 정점에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양 팀의 심장 - 홈 구장 완벽 비교 분석

축구장은 콘크리트와 철골로 만든 단순한 구조물이 아닙니다. 수만 명의 희로애락이 새겨진 성지이자, 도시의 영혼이 숨 쉬는 공간이죠. 타인위어 더비의 두 무대는 각 도시의 성격을 그대로 투영하며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도심 한복판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시내 어디서든 보이는 이 거대한 구조물은 마치 중세 성채처럼 도시를 굽어보며, 52,000명의 함성이 경사진 지형을 타고 도심 전체로 울려 퍼집니다. 반면 선덜랜드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위어 강변 평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49,000석 규모의 현대적 설계로 음향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건축학적으로도 두 경기장은 상반된 철학을 보여줍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가 1892년부터 이어온 전통과 증축의 역사를 간직한 ‘진화하는 성소’라면, 1997년 개장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21세기형 다목적 경기장의 표본입니다. 이제 각 구장이 품은 독특한 이야기와 더비 데이에 만들어내는 특별한 분위기를 하나씩 들여다보겠습니다.

뉴캐슬의 요새, 세인트 제임스 파크 심층 정보

49,000명을 수용하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단순한 축구장이 아닌, 선덜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1997년 몽크웨어머스 탄광 부지 위에 세워진 이 경기장은 폐광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도시의 부활을 상징하죠.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광부 램프 조형물은 이곳이 품은 역사를 조용히 증언합니다.

더비 매치가 열리는 날, 선덜랜드 AFC 공식 홈페이지가 자랑하는 ‘The Roar’가 경기장을 가득 채웁니다. 특히 사우스 스탠드에서 시작되는 “Ha’way the Lads!” 구호가 4만 9천 명의 목소리로 증폭될 때, 그 음압은 실제로 110데시벨을 넘어섭니다. 위어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경기장의 독특한 구조와 만나 만들어내는 음향 효과는 상대 팀 선수들의 의사소통을 방해할 정도로 강력합니다.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광경은 선덜랜드 팬들에게 조상들의 투쟁 정신을 일깨우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습니다.

선덜랜드의 자부심,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심층 정보

두 도시의 앙숙 관계는 축구공이 굴러다니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의 열기가 잉글랜드 북동부를 뒤덮었을 때 뉴캐슬과 선덜랜드는 경제적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타인 강변의 뉴캐슬은 석탄 수출의 중심지로 번영했고, 위어 강을 끼고 있는 선덜랜드는 세계 최대 조선 도시로 명성을 떨쳤죠.

특히 조선업에서의 경쟁은 극에 달했습니다. 1840년대 선덜랜드가 연간 선박 건조량에서 뉴캐슬을 추월하자, 두 도시 간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일자리를 찾아 두 도시를 오갔고, 이 과정에서 지역 간 편견과 적대감이 뿌리내렸습니다. 펍에서의 말다툼, 시장에서의 경쟁, 심지어 철도 노선을 두고 벌인 정치적 다툼까지 – 일상의 모든 영역이 경쟁의 무대였습니다.

20세기 초, 노동자 계급의 오락거리로 축구가 급부상하면서 이 오래된 적대감은 새로운 분출구를 찾았습니다. 1898년 선덜랜드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뉴캐슬이 1905년 FA컵을 들어올렸을 때, 경기장은 두 도시의 자존심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었습니다. 탄광과 조선소에서 시작된 100년 묵은 라이벌 의식이 이제는 초록 잔디 위에서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더비의 역사를 만든 레전드 선수들

카메라가 천천히 줌인하면서 잡아내는 한 선수의 표정. 더비 매치의 진정한 드라마는 바로 이런 순간들로 만들어집니다. 타인위어 더비가 단순한 90분의 경기를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서사시가 된 데에는 영웅적인 선수들의 존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특히 지역 출신 선수가 더비에서 결정적인 골을 넣는 순간, 그는 단번에 불멸의 존재가 됩니다. 고턴에서 나고 자란 뉴캐슬 팬이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선덜랜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다면? 그 선수의 이름은 펍에서, 거리에서, 손자 세대까지 전해질 전설이 되는 것이죠. 더비의 압박감 속에서 빛나는 활약은 일반 리그 경기에서의 10골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닙니다.

이제 두 클럽의 역사를 대표하는 거인들을 만나볼 시간입니다. 뉴캐슬의 앨런 시어러 –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더비 7골의 주인공. 그리고 선덜랜드의 케빈 필립스 – 1999-2000 시즌 유럽 골든슈 수상자이자 더비의 저격수. 이들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라이벌전의 역사를 써내려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뉴캐슬 팬들이 영원히 기억하는 영웅, 앨런 시어러

고턴에서 태어나 갤로게이트 엔드에서 함성을 질렀던 소년은 결국 그 경기장의 왕이 되었습니다. 앨런 시어러, 206골로 뉴캐슬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이 남자에게 선덜랜드전은 남다른 의미였죠. 더비에서 터뜨린 7골 중 특히 2002년 4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기록한 결승골은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그 골’로 통합니다.

시어러의 위대함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섭니다.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를 보면 눈빛이 달라졌고, 거친 태클에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그의 모습은 뉴캐슬의 투혼 그 자체였습니다. 오른팔을 번쩍 드는 그의 시그니처 세리머니가 나올 때마다 5만 관중은 하나가 되었고, 특히 선덜랜드를 상대로 그 팔이 올라갈 때면 도시 전체가 들썩였죠. 은퇴 후에도 그가 더비 매치마다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젊은 선수들은 마치 수호신이 지켜보는 듯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평균 나이 24세, 유럽 축구계를 호령하던 황금 세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매트 버스비 감독과 생존자들은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기적처럼 살아남은 바비 찰튼과 동료들은 희생된 이들의 몫까지 뛰겠다는 각오로 피치에 섰고, 10년 후인 1968년 유러피언컵 우승으로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BBC의 뮌헨 참사 특집 기사는 이 비극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불굴의 DNA를 심어주었다고 평가합니다. 오늘날에도 올드 트래퍼드의 시계는 3시 4분을 가리키며, 그날의 기억과 함께 불사조처럼 되살아난 구단의 정신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선덜랜드의 상징적인 인물 케빈 필립스와 그 외 선수들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은 네 명의 축구선수가 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미지. 중앙의 선수가 황금 축구화 트로피를 들고 있다.

1999-2000시즌, 유럽 골든슈를 들어올린 케빈 필립스는 선덜랜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스트라이커였습니다. 30골로 잉글랜드 선수 최초의 유럽 득점왕에 오른 그는 니얼 퀸과 함께 ‘썬더볼트 듀오’로 불리며 프리미어리그를 공포에 떨게 했죠. 2000년 2월 더비에서 터뜨린 그의 선제골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었고, 뉴캐슬 수비진을 농락하는 그의 움직임은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필립스와 퀸의 환상적인 호흡 외에도 선덜랜드에는 더비의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1973년 FA컵 결승 영웅 이언 포터필드는 더비에서도 빛났고, 최근에는 조던 헨더슨이 떠나기 전 마지막 더비에서 보여준 투혼이 팬들의 가슴에 새겨졌죠. 특히 짐 몽고메리는 38번의 더비 출전으로 ‘미스터 더비’라 불리며, 1970년대 뉴캐슬의 공격을 수차례 좌절시킨 수문장이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붉은색과 흰색 유니폼에 새겨진 자부심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바꾼 타인위어 더비 명장면

“그리고 골! 믿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인위어 더비입니다!”

방송 부스에서 수없이 외쳐본 이 문장이 나올 때마다, 저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드라마임을 실감합니다. 20년간 하이라이트를 편집하면서 깨달은 건, 타인위어 더비의 진정한 가치는 최종 스코어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순간들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기는 단 한 번의 터치로 역사가 됩니다. 1990년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뉴캐슬의 강등을 확정지은 선덜랜드의 골처럼 말이죠. 반대로 2006년 선덜랜드가 이미 강등된 상태에서 뉴캐슬을 4-1로 격파한 ‘위로의 대승’은 절망 속에서도 라이벌전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팬들의 자존심을 보여줬습니다. 때로는 5-1, 5-0같은 일방적인 스코어가, 때로는 90분을 넘긴 극장골이 영원한 전설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소개할 장면은 단순한 하이라이트가 아닙니다. 두 도시의 희로애락이 응축된,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신화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그날 경기 봤니?”라고 물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들. 그 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1990년 플레이오프, 운명을 갈랐던 준결승전

1990년 5월 16일,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프레스룸에는 긴장감이 가득했습니다. 1부 리그 승격을 결정짓는 플레이오프 준결승, 홈에서 치르는 단판 승부였기에 뉴캐슬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였죠. 하지만 에릭 게이츠가 전반에 터뜨린 선덜랜드의 선제골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가디언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타인위어 더비에서도 이 경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 파급력 때문입니다. 마르코 가브리치의 추가골로 2-0 승리를 거둔 선덜랜드는 웸블리 결승행 티켓을 따냈고, 뉴캐슬은 자신들의 홈에서 라이벌에게 꿈을 빼앗기는 최악의 굴욕을 당했습니다. 경기 후 침묵에 빠진 5만 관중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한 뉴캐슬 팬은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악몽”이라 했고, 선덜랜드 팬들은 이날을 “세인트 제임스의 기적”이라 부르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펍에서 노래합니다.

2010년대, 선덜랜드의 역사적인 6연속 무패 기록

축구 통계학에서 보기 드문 이변이 2010년대 타인위어 더비에서 일어났습니다. 2012년 8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선덜랜드가 뉴캐슬을 상대로 거둔 6연속 무패(5승 1무) 기록은 더비 역사상 가장 일방적인 지배력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크로니클 라이브가 분석한 ‘6연속 지배’의 전술적 배경을 보면, 파올로 디 카니오의 열정적 지휘부터 거스 포옛의 실용적 전술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특히 2013년 4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의 3-0 대승, 2014년 2월의 아담 존슨 결승골 등은 통계를 넘어선 심리적 우위를 확립했죠. 이 기간 동안 뉴캐슬은 감독을 세 번이나 교체했지만 선덜랜드의 벽을 넘지 못했고, 선덜랜드 팬들은 “Six in a Row”라는 구호를 만들어 지금도 자랑스럽게 외칩니다. 프리미어리그 전체 더비 중에서도 이런 일방적 연속 기록은 극히 드문 현상입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북동부의 열정은 계속된다

석탄 먼지와 조선소의 망치 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타인과 위어 강변에서 시작된 두 도시의 경쟁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타인위어 더비는 단순한 90분의 축구 경기가 아닌, 150년 역사가 응축된 문화적 현상입니다. 산업혁명의 주도권 다툼에서 시작되어 축구장으로 옮겨진 이 라이벌리는 잉글랜드 북동부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죠.

재키 밀번의 11골 기록은 뉴캐슬 선수로서는 여전히 깨지지 않았고, 앨런 시어러의 한 팔 세리머니는 전설이 되었으며, 선덜랜드의 ‘6연속 무패’는 영원한 자랑거리로 남았습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갤로게이트 엔드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사우스 스탠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함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5월, 선덜랜드가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했습니다. 이로써 2025-26 시즌, 무려 10년 만에 타인위어 더비가 잉글랜드 최상위 무대에서 재개됩니다. 선수는 바뀌고, 감독은 교체되며, 리그 순위는 오르내립니다. 하지만 검은색과 흰색, 붉은색과 흰색의 대결이 상징하는 북동부의 자존심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머니가 손녀에게 더비의 추억을 전하는 한, 타인위어 더비는 잉글랜드 축구의 심장부에서 계속 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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